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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촌동 고분군 출토 유리구슬의 용도와 기능
    실크로드와 유리 이야기 2022. 11. 1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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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은 갈대라지요.
    정말 그런가 봅니다.

    유리기만 공부하던 제가 요즘 유리구슬에 자꾸만 눈이 갑니다.
    참아보려 애써봤지만, 눈이 가는 걸 어찌하겠습니까.

    당분간은 유리구슬을 주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 '서울 석촌동 고분군(사적)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덕에 조회수가 소폭 상승하여 룰루랄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희한하게도 '석촌동 고분군'에서는 유리기는 보이지 않고 온통 유리구슬만 출토되었었죠.
    왜일까요?

    '고고학'단순한 '역사 복원'을 넘어 '왜?'를 언급해야만 하는 학문입니다.
    물론 그 결론은 현대인이 과학적인 근거를 토대로 제시하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지만 말이죠.

    그럼 함께 생각해봅시다.


    유리구슬...
    한국 삼국시대의 유리구슬은 분명 '장신구의 구성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유리구슬이 단독으로 출토되는 게 아니니 말이죠.

    석촌동 고분군 12호 널무덤 출토 유리구슬 목걸이를 발굴조사하는 모습 (ⓒ한성백제박물관)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했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주거지에서 발견된 사례는 없지요.

    그렇다면???
    '부장품의 기능'을 했던 겁니다.

    부장품이라...
    왜 부장품으로 사용되었을까요?

    석촌동 고분군 12호 널무덤 출토 유물 (ⓒ한성백제박물관)


    '부장자의 신분을 상징'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진시황릉 병마용갱(秦始皇陵兵馬俑坑)이 왜 그토록 화려하겠습니까?
    무덤에 묻힌 그 모습 그대로 사후세계에서도 생활할 거란 막연한 믿음 때문이겠지요.

    역시... 인간의 믿음은 참 강한 힘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백제지역에서만 유리구슬 목걸이가 출토된 건 아닙니다.
    신라와 가야에서도 무지막지한 수량의 유리구슬 목걸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건 왜일까요?

    삼국시대에 '유행'하였던, '선호'했던 장신구의 모습이니까요.
    마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곱창밴드'처럼 말입니다.

    2022년 11월 17일 퇴근 후 카페에서 일하는 내 옆모습과 곱창밴드 (사진출처: 옆자리에 앉으신 여대생 분_감사합니다!!)


    석촌동 고분군 12호 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리구슬 목걸이와 경주 황성동 덕천리에서 발견된 유리구슬 목걸이를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앗, 장식 구성은 비슷하군요!!

    경주 황성동 덕천리에서 발견된 유리구슬 목걸이 (사진출처: 김성실_저입니다 저요!!)


    정말 삼국시대에 이 유리구슬 목걸이가 유행하긴 했나 봅니다.
    저도 하나 갖고 싶군요.
    유리구슬 시리즈는 다음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기대해주세요.

    오늘은 수능일이죠?
    수험생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
    취미 삼아 시작한 티스토리...
    깜짝 놀랄 일이 많았던지라..
    오늘만큼은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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